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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엽 수술로 노벨상까지 탄 이면의 얼음송곳 수술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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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엽 수술로 노벨상까지 탄 이면의 얼음송곳 수술이야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12. 26. 02:06

버클리의 존 R. 설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피를 뿜어내는 유기물 기계를 설계한다면 심장과 비슷한 것이 나오겠지만, 의식을 만드는 기계를 설계한다고 할 때 1,000억 개의 뉴런을 떠올릴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뇌의 기능을 대체로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 조금씩 이해해왔다고 해도 놀랄 필요는 없다. 신경과학의 초창기에 일어난 가장 큰(그리고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건 중 하나는 1848년 미국 버몬트의 시골에서 일어났다.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젊은 철도 건설인이 바위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다가 폭발이 너무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길이 60센티미터쯤 되는 충전 막대가 그의 왼쪽 뺨을 뚫고 들어가서 머리 꼭대기로 튀어나가 약 15미터 떨어진 땅에 땡그랑하며 떨어졌다. 

 

막대에 밀려서 지름 약 2.5센티미터의 원기둥 형태로 뇌의 내용물이 완벽하게 쑥 빠져나갔다. 게이지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심지어 의식조차 잃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그는 왼쪽 눈을 잃었고 성격도 영구히 바뀌었다. 사고 전까지는 태평스럽고 인기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뚱해 있고 시비를 걸고 불쑥 욕설을 내뱉는 사람이 되었다. 한 오랜 친구가 서글프게 토로했듯이, 그는 “더 이상 게이지”가 아니었다. 

 

이마엽이 손상된 환자들이 종종 그렇듯이, 게이지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곳에 정착할 수가 없게 된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에서 남아메리카로 갔다가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그곳에서 발작을 일으켜 서른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게이지의 불행은 뇌의 물리적 손상이 성격을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증거였지만, 그 뒤로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연구자들은 종양으로 이마업의 일부가 손상되거나 침범당할 때, 당사자가 신기하게도 차분해지거나 유순해지는 사례도 종종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1880년대에 고틀리프 부르크하르트라는 스위스 의사는 일련의 수술을 통해서 정신 장애가 있는 한 여성의 뇌를 18그램 제거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 과정에서 여성은 “위험하면서 흥분한 정신착란자에서 조용한 정신착란자”로 바뀌었다. 그는 다른 환자 5명에게도 이 수술을 시도했지만, 3명은 사망하고 2명은 간질을 일으켰기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50년 뒤에 포르투갈에서 리스본 대학교의 신경학 교수 에가스 모니스가 같은 시도를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조현병 환자들의 이마엽을 잘라내면 불안정한 마음이 가라앉을지 알아보기 위해서 시험 삼아 이마엽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마엽 절개술(frontal lobotomy, 특히 영국에서는 leucotomy라고 불리기도 했다)이 탄생했다.

모니스는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거의 완벽한 사례를 제공했다. 그는 환자가 어떤 손상을 입을지 또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수술을 했다.

 

동물을 대상으로 예비 실험조차도 전혀 하지 않았다. 환자를 세심하게 선별한 것도 아니었고, 수술 뒤의 경과도 자세히 지켜보지 않았다. 심지어 사실 수술도 직접 집도한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시킨 뒤에 감독만 했고 어떤 식으로든 성공하면 그 영예를 흔쾌히 독차지했다.

 

그 수술은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마엽 절개술을 받은 이들은 대체로 덜 폭력적이고 더 온순해졌다. 그러나 성격도 돌이킬 수 없이 크게 손상되고는 했다. 그 수술법이 단점이 많고 모니스의 임상 기준 역시 유감스럽기 짝이 없었음에도, 그는 전 세계에서환영을 받았고 1949년에는 궁극적인 찬사인 노벨상까지 받았다.

미국에서는 월터 잭슨 프리먼이라는 의사가 모니스의 수술법에 관해서 듣고서 그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다. 프리먼은 거의 40년동안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앞에 데려오는 거의 모든 사람의 이마엽을 잘라냈다. 한번은 순회하면서 12일 동안 225명의 이마엽을 잘라냈다.

 

그는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환자도 수술했다. 공포증 환자, 거리에서 그냥 끌고 온 주정뱅이, 동성애 행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 등 한마디로 정신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일탈 행동을 보인 거의 모든 이들이 그의 수술 대상이었다. 프리먼의 방법이 너무나 빠르고 야만적이어서, 다른 의사들은 보고는 움찔했다.

 

그는 가정에서 흔히 쓰는 얼음송곳을 눈구멍을 통해서 뇌 가까이 들이민 뒤에 망치로 쾅 쳐서 머리뼈를 깨서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마구 휘저어서 신경 연결을 끊어놓았다. 그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수술법을 경쾌하게 묘사했다.

충격을 가해서 깨뜨렸지....“마취제에 취해 있는 동안 얼음송곳을 눈알과 눈꺼풀 사이로 넣어서 눈구멍 천장으로 찔러넣는 거야. 그러면 사실상 뇌의 이마엽으로 들어가게 돼. 

 

이제 좌우로 송곳을 휘저어서 신경을 잘라내지. 양쪽에 환자 두 명을 놓고 또 한 켠에 한 명을 더 놓고 수술을 했어. 합병증은 전혀 없었어. 한 명이 눈이 새까매진 것만 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별것 아닌 듯했어. 보기에는 안 그렇겠지만 말이야.

진짜로 그랬다. 그 수술이 너무나 엉성한 탓에 뉴욕 대학교의 경험많은 한 신경학자는 프리먼의 수술을 지켜보다가 그만 까무러쳤다. 그러나 수술은 환자가 대개 한 시간 안에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빨리 끝났다. 

 

의학계의 많은 이들은 이 신속함과 단순함에 감탄했다. 프리먼은 그때그때 되는 대로 수술에 임했다. 장갑도 수술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그냥 돌아다니던 평상복 차림 그대로 수술을 했다. 

 

그 수술법은 흉터를 전혀 남기지 않았지만, 자신이 어떤 정신능력을 파괴하고 있는지 확실히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맹목적으로 수술을 했다. 얼음송곳은 뇌 수술을 위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따금 끝이 부러져서 환자의 머릿속에 남기도 했다. 

 

그러면 수술로 꺼내야 했다. 환자가 그 전에 사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윽고 프리먼은 뇌 수술용 송곳을 고안했는데, 사실상 더 튼튼하게 만든 얼음송곳에 불과했다.

아마 가장 놀라운 점은 프리먼이 수술할 자격이 아예 없는 정신과 의사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많은 의사들은 그 사실에 섬뜩함을 느꼈다. 프리먼의 수술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약 3분의 2는 그 수술로 아무런 혜택도 얻지 못했거나 상태가 더 나빠졌다. 2퍼센트는 사망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실패 사례는 나중에 대통령이 될 인물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케네디였다. 1941년 스물세 살이 된 그녀는 활기차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때로 고집을 심하게 부리고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 그녀는 학습 능력도 조금 떨어졌다.

 

심각한 장애 수준이었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듯하다. 외고집을 피우곤 하는 딸에게 절망한 나머지 부친은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프리먼에게 딸의 이마엽 걸개술을 의뢰했다. 그 수술로 본질적으로 로즈메리는 파괴되었다. 

 

그 뒤로 64년 동안 그녀는 말도 하지 못하고, 실금을 하고, 성격도 잃어버린 채로 미국 중서부의 요양원에서 지냈다. 그녀가 사랑하던 모친은 20년 동안 그녀를 찾지 않았다.

프리먼을 비롯한 이들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

 

다는 사실이 서서히 명백해지면서, 그 수술의 인기도 사라져갔다. 효과적인 정신 작용제들이 개발된 덕분이기도 했다. 프리먼은 70대까지도 이마엽 절개술을 계속하다가 1967년에야 마침내 은퇴했다. 그를 비롯한 이들이 남긴 여파는 여러 해 동안 더 이어졌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들도 있다. 

 

1970년대 초에 나는 런던 외곽의 한 정신병원에서 2년 동안 일했다. 그곳의 한 병동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대부분 1940-1950년대에 이마엽 절개술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순종적이고 생기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뇌는 가장 취약한 기관 중의 하나이다. 역설적이게도 보호하는 머리뼈 안에 아늑하게 들어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뇌는 감염으로 붓거나 출혈이 일어나서 액체가 더 늘어날 때면 손상을 입기 쉽다. 

 

늘어난 물질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뇌에 압박이 가해져서 치명적인 결과가 벌어질 수 있다. 또 뇌는 자동차 충돌이나 추락 같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으면 머리뼈에 부딪혀서 손상을 입기도 쉽다. 뇌의 바깥막인 뇌막에는 뇌척수액이 얇게 층을 이루고 있어서 조금의 완충 효과를 발휘하지만, 말 그대로 조금이다. 

 

맞충격 손상(contrecoup injury)이라는 이 손상은 충격 지점의 반대편에서 나타난다. 뇌가 반대편으로 밀리면서 보호(여기서는 그다지 보호한다고 할 수 없지만) 덮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이런 손상은 신체 접촉이 이루어지는 스포츠에서 매우 흔하다. 이것이 심각하거나 반복된다면 만성외상 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이라는 퇴행성 뇌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전미 미식축구 연맹에서 뛰다가 은퇴한 선수들 가운데 20-45퍼센트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CTE를 앓는다는 추정값도 나와 있다. 이 증상은 은퇴한 럭비 선수들에게도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퇴한 오스트레일리아식 축구 선수들과 선수 시절에 헤딩을 많이 한 축구 선수들도 마찬가지이다.

뇌는 접촉 손상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에도 취약하다. 인간은 뇌졸중과 발작에 유달리 취약하다. 대부분의 다른 포유동물들은 결코 뇌졸중을 일으키지 않으며, 설령 뇌졸중을 겪는 종이라고 해도 그런 일은 극히 드물게 일어난다. 

 

반면에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뇌졸중이 세계적으로 두 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이다. 왜 그런지는 수수께끼이다. 대니얼 리버먼이 「우리 몸 연대기(The Story of the Human Bochy)』에서 간파했듯이, 우리 뇌에는 뇌졸중 위험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혈액 공급망이 탁월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뇌졸중에 걸린다.

간질도 마찬가지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게다가 간질 환자들은 역사적으로 악마에 씌었다는 비난을 받거나 기피의 대상이 되는 부담까지 안아왔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꽤 오랫동안 간질 발작이 감염 때문에 생긴다는 믿음이 의료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사람들은 발작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발작이 옮을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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